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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와 크렘린
진정한 변화는 지상의 변화가 아니라 지하의 변화라야 합니다
‘모스크바’와 ‘크렘린’. 20세기를 통하여 이 말보다 영욕(營辱)을 함께 했던 말도 없을 것입니다. ‘악의 제국’이었으며 ‘음모의 밀실’이었는가 하면 사회주의의 첫 봉화를 올린 혁명의 성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극단의 언어들도 20세기와 함께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과 함께 20세기를 열었던 이곳은 이제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바야흐로 20세기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로 오는 길은 멀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 세기를 도강(渡江)하는 장정(長程)같이 느껴졌습니다.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벽은 나의 의식 속에 아득한 높이로 건재하고 있었나봅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바깥을 지켜보았습니다. 가는 빗줄기가 시선을 긋고 있는 창 밖으로 모스크바는 무성한 숲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짧은 여정 동안에 어디서부터 무엇을 찾아야 할지 막연했습니다. 나도 다른 방문자들처럼 ‘붉은 광장’에서부터 시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광장은 어제 내린 비로 말끔히 씻겨 있고 크렘린 궁 주벽(周壁)에는 아침 햇살이 눈부십니다. 모스크바 강을 배경으로 양파머리를 이고 있는 성 바실리 사원의 아름다운 모습과 주벽의 망루인 스파스카야 시계탑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동화같은 알라딘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광장 곳곳에는 모스크바의 역사가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농민 봉기를 이끌었던 스텐카 라진(Stenka Razin)의 처형대가 그대로 남아 있고, 레닌 묘에는 방부 처리된 레닌의 유체가 부분 조명을 받으며 백랍 인형처럼 누워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생전의 모습으로 어두운 지하에 누워있는 레닌의 시신은 충격이었습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시의 격동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불타는 크렘린을 등지고 폭설 속을 철수하던 나폴레옹의 모습을 비롯하여 이곳에서 명멸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결코 동화의 세계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광장 이곳 저곳에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의 한가로운 모습은 역시 변화하고 있는 오늘의 러시아를 보여줍니다.
모스크바 시내에도 변화의 모습이 확연합니다. 대로변에 있는 고층 건물들은 대부분 건물의 1층을 상점으로 바꾸는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물건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섰던 ‘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는 비싼 물건값을 치를 돈이 없습니다.

 

냉전의 세기를 이끌어왔던 러시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모습은 도처에서 쉽게 확인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당신에게도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몇 그루의 나무 이야기로 숲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과 개방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러시아 사회가 5%의 특권 부유층과 10%의 중산층, 그리고 절대 다수인 85%의 소외 계층으로 재편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편’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먼저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일정한 권력 주체의 변화가 없지 않다는 점에서 재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층 내부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변화에 대한 무수한 논의는 상층 5%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변화와 재편은 헤게모니 그룹 내부의 협소한 권력 이동일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85%의 소외 계층은 과거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이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변화는 ‘방법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래의 이념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 그 지배 기제를 시장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최고 강령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온 이 85%의 인민이 이제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낯선 장치 속에 던져지고 또 다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5%의 노브이 루스키(신흥 러시아 인)를 핵으로 하여 자본가 계층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초국적(超國籍) 자본과 결합하고 안으로는 마피아라는 불법 집단의 합법적 부분과 유착된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도 자국 자본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개혁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방법의 일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담론은 개혁 개방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자본에는 국경이 없으며 자본 고유의 운동만이 있을 뿐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구나 초국적 자본과 결합한 자본에 대하여 국민 경제적 범주를 요구한다거나 주체적 개혁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우주공학연구소의 연구원에서 해고되어 운전기사로 거리에 나온 안드레이는 개혁은 ‘저들의 일’이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저들이란 5%의 상층부를 가리킵니다.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의 주체이며 그 주체의 사회적 성격이라는 당신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더구나 민의(民意)를 수렴해내는 하학상달(下學上達)의 민주적 통로가 닫혀 있을 때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밟게 될 것인가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개혁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개혁이 어떠한 과정을 밟아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모스크바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푸슈킨, 고골리,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르바트 거리에는 유럽풍 카페가 줄지어 있고, 카페에서 들려오는 록 음악과 함께 거리를 메우고 있는 젊은이들은 서울이나 유럽의 젋은이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심지어 인터걸과 마피아에 관한 이야기도 무성하여 러시아의 변화는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엄청날 것이라는 상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변화하는 모스크바 거리를 거닐면서도 내내 지울 수 없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급속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85%의 계속되는 희생입니다. 직장을 잃고, 사회보장이 줄고,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변함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노력 동원의 풀(pool)이었던 이 85%의 압도적 다수가 이제는 저임금 노동력의 풀이 되어 5%의 투자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을 뿐입니다.
안드레이는 책으로만 배웠던 자본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이제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장’의 법칙과 질서가 어떤 것인가를 알 리가 없습니다. 시장이 결코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시장과 자유, 경쟁과 평등이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으며 시장이 적자 생존의 세계가 아니라 강자 군림의 세계라는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러시아는 지하에 남아 있었습니다. 지하 150m를 달리는 지하철에만 남아 있었습니다. 젊음과 정열을 바쳐서 자신을 희생해온 노인들의 자존심이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신은 모스크바의 자하철에서 스슴없이 젊은이들을 일어서게 하고 당당하게 좌석을 차지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노인들의 당당함은 바로 이 지하철을 건설하고 러시아의 수많은 건설 현장에서 젊음과 이상을 불태웠던 그들에게 이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존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모습은 꽃을 들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과 묵묵히 책을 읽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승객의 절반 정도가 손에 꽃이나 책을 들고 있는 지하철 풍경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급속한 변화의 물결에서 소외된 무력함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엄청난 역사의 격동을 겪어온 민중의 우직함으로 비치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의 개혁과 개방이 이 무력하고 우직한 150m 지하에 주목하지 않는 한 좀체로 바꾸거나(改) 열어(開)나가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와 강변의 승선장에서 배를 탔습니다. 모스크바 강은 북서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운 을자(乙字) 강입니다. 강변 승선장에도 인적이 드물고 유람선에도 승객이 별로 없었습니다. 게다가 강물도 배도 바쁠 것 하나 없다는 듯 유유하기 그지없습니다. 세사(世事)의 무상함은 강물이 이야기해준다는 옛 시구가 생각났습니다.
모스크바 강이 크렘린에 가까워지자 강물은 한 자락을 여투어내어 크렘린 광장 언저리로 다가갑니다. 크렘린으로 다가간 강줄기는 광장을 감싸고 흐르며 한동안 속삭이다가 다시 본류와 만나 멀리 볼가 강을 향해 떠나갑니다.
나는 크렘린 광장에서 하선하여 떠나가는 강물을 배웅하듯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크렘린 광장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리고 ‘러시아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볼가 강에게 오늘의 모스크바를 무어라 전할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궁금한 것은 볼가 강의 대답이었습니다. 드넓은 대지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볼가 강이 무어라 대답할지 궁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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