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숲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녹색의 희망, 아마존
인간적인 사람보다 자연적인 사람이 칭찬입니다
오늘은 아마존에서 엽서를 보냅니다. 사람들은 아마존을 '녹색의 지옥'이라고 합니다. 그 엄청난 원시의 야성 때문에 지옥이란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릅니다. 길이 7,000km, 유역면적 700만km2에 달하는 광대한 녹색의 아마존은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원시의 대지입니다. 아마존의 오지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겨우 강변을 배회하는 약소한 관광에 나서면서도 주사를 맞고 방충제를 바르는 둥 부산을 떨었던 까닭도 아마존의 야성에 대한 공포를 떨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마존 강변의 작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곳 어린이와 어린 엄마를 보면서 아마존을 녹색의 지옥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뉘우치게 됩니다. 에어컨이 나 냉장고는 물론 변변한 칼 한자루 갖지 않은 채 수천 년에 걸쳐 이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 에게는 아마존이 천혜의 삶터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구의 허파라고 일컬어지듯 아 마존이 안고 있는 물과 숲은 오염에 시달리는 지구를 오늘도 말없이 씻어주고 있습니다.
아마존을 지옥이라고 일컫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기피해온 우리의 역사가 만들어낸 잘못된 언어이며 우리의 부끄러운 얼굴입니다. 나는 이 거대한 아마존의 입구에서 감히 그 웅장한 깊이를 미처 만나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만 아마존이 키우고 있는 무수한 생명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마존을 '녹색의 희망'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아마존의 본류인 술리몽스 강과 네그루 강이 합류하는 곳에 인구 150만의 도시 마나우스가 있습니다. 마나우스는 19세기말 아마존에 천연고무가 발견되면서 들어선 도시입니다. 고무산업이 말레이시아로 옮겨간 뒤 마나우스는 활기를 잃고 말았지만 지금도 이곳을 면세 지역으로 만드는 등 외국자본을 유치하기에 열심입니다.
마나우스에는 당시의 번영을 짐작케 하는 유럽풍의 시가지와 건물들이 있습니다. 특히 르네 상스풍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아마조나스 오페라 명소로 남아 있습니다. 유럽에서 수입한 36,000장의 세라믹 타일로 만든 돔이 지금도 금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안내인은 이 오페라극장의 화려함을 예찬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모든 건축 자재를 유럽에서 수입하였음은 물론이고 내부 구조와 벽화, 거대한 무대장막, 그리고 이탈리아의 거장 도메니코의 천정화 등 실로 유럽의 오페라 하우스를 옮겨다놓았습니다. 노블 박스(Noble Box)의 기둥에는 셰익스피어, 괴테, 베토벤, 몰리에르, 모짜르트 등 유럽의 문인과 예술가들을 상징하는 마스크가 걸려 있습니다.
전성기 때의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매주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습니다. 공연되는 오페라도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그리고 <세빌랴의 이발사> 세편입니다. 당시에 명성을 떨치던 카루소가 이 극장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이곳에는 유럽을 향한 향수와 동경이 역력합니다.
반면 인디오 박물관에서 본 이곳 원주민들의 삶은 마나우스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우선 원주민들이 사용한 물건중에는 수입한 것이 한 개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물건들은 어느것이나 아마존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나무는 물론이고 잎사귀와 열매와 나무껍질 등으로 만든 갖가지 물건들은 하나같이 아마존의 숲에서 얻은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아구동이라는 나무에서 따낸 솜과 그 솜을 타서 자아낸 실로 만든 생활용품들은 화문석을 능가하는 색깔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아마존 밀림에서 아마존 사람들의 손 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모든 물건들은 완벽하게 아마존의 소산을 재료로 하여 원주민들이 손수 만든 것들입니다. 자연을 입고 먹고 자연의 품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자연스런 삶이 역력합니다. 이들에게는 스스로 만들지 못하면서 소비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마존의 어린이들은 이곳에 서 있는 나무들과 함께 태어나서 나무들과 함께 먹고 자라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문명인들의 눈에는 당연히 원시적인 것으로 비치겠지만 이들의 삶에는 싱싱한 생명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마존만큼 크고 장구한 생명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아마존 원주민들의 삶이 과거보다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불법으로 잠입해 들어와 이들의 마을을 불사르는 금 채굴꾼들이나 마약 재배자들이 원주민들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법을 묵인하는 정부의 원주민 소멸정책도 그들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원주민들의 퇴락과는 반대로 새로운 문명의 이기로 자신의 무장을 부단히 증강하고 있는 마나우스는 쉽게 그 위력을 잃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조나스 오페라 극장의 전체적 인상은 거대한 아마존과 싸우느라고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비단 이 극장뿐만이 아니라 마나우스는 도시 그 자체가 아마존에 뛰어든 이질적인 틈입자였습니다. 아스팔트는 뜨겁고 선창의 쇠붙이들은 녹슬고 있습니다. 마나우스는 비록 그 규모가 150km2에 달하는 큰 도시이지만 700만km2의 광활한 아마존 유역에 비교해보면 그것은 실로 홍로점설(紅爐點雪)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존과 싸우고 있는 마나우스와 아마존과 더불어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은 너무나 선명 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선명한 대조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게 합니다. 그리고 몇천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어느 것이 더 오래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인간적인 사람'이란 말이 이제는 더 이상 칭찬이 못 되며 차라리 '자연적인 사람'이 칭찬이 된 다던 당신의 말이 떠오릅니다.

 

에콰도르의 키토 공항에서 엽서를 꺼내 다시 글을 씁니다. 비행기를 바꿔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참으로 가슴아픈 정경을 수없이 목격하여야 하였습니다.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과 그를 배웅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이별의 장면입니다. 신혼 여행과 해외 여행의 즐거움으로 부풀어 있는 김포공항과는 달리 이곳은 가족과 이별하고 멀리 돈 벌러 떠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별리(別離)의 나루가 되어 있습니다. 만주로, 구주 탄광으로, 월남으로 떠나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이와 거동이 불편한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이 쏟아져나와 한 사람 한 사람과 볼인사를 나누고 눈물을 흘리며 긴 포옹을 풀지 못합니다.
사진 한 장에 온 가족의 얼굴을 담아놓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이역(異域)으로 떠나가는 이들의 옆에서 나도 어느새 그이의 가족이 되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아마존을 떠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비단 아마존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곳곳에서 지금도 고향과 혈육을 떠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혹시나 가방을 날치기 당하지 않을까 경계하던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럽습니다. 별리의 가슴아픈 나룻가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돌이켜봅니다. 우리는 너나없이 저마다의 강물 같은 사연과 뜨거운 정을 안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향 산천을 떠나지 않고, 정든 사람을 떠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오늘날에는 너무나 순진 한 공상이 되어버린 감상에 젖게 됩니다.

 

일 년에도 몇 차례씩 남미를 찾아가는 당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남미에 대한 당신의 애정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가난하나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는 미처 몰랐던 그 말의 의미를 지금 이곳 낯선 에콰도르의 작은 공항에서 보게 됩니다. 당신의 대답을 다시 듣게 됩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